관아 마당, 밤이 깊어갈수록
등불 아래의 공기는 점점 더 숨 막히듯 무거워졌다.
사람들 앞에 다시 끌려 나온
성춘향.
그 앞에 선
변사또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가벼운 비웃음이 아니었다.
분노와 집착이 뒤섞인,
점점 더 포악해진 눈빛이었다.
변사또:
“…아직도냐.”
낮게 깔린 목소리.
변사또:
“이쯤 했으면…
네 고집도 꺾일 법한데.”
춘향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변사또를 더 자극했다.
변사또:
“좋다… 끝까지 가보자는 거냐?”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변사또:
“네가 버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줄 아느냐?”
춘향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춘향:
“…적어도, 제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순간—
변사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변사또:
“마음?!”
그는 비웃듯 크게 외쳤다.
변사또:
“그깟 마음 하나로
목숨을 걸겠다는 거냐?!”
그는 손을 휘저르며 주변을 가리켰다.

변사또:
“여기 있는 놈들 다 봐라!
누가 네 편이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사또는 다시 춘향을 노려봤다.
변사또:
“세상은 힘 있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그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춘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춘향:
“…그렇기에,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말.
그러나—
그 한마디가 변사또의 분노를 완전히 건드렸다.
변사또:
“…이년이 끝까지…”
그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변사또:
“내가 얼마나 더 참아줘야 하느냐!!”
그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자의 냉혹함으로 굳어 있었다.
변사또:
“…이제 끝이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변사또: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
살 길도 열어주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섰다.
변사또:
“그런데도 끝까지 거부했으니—
그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
주변 사람들의 숨이 멎은 듯 조용해졌다.
변사또:
“성춘향!”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변사또:
“관아의 명을 거역하고,
사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며—
끝내 고집으로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는 일부러 더 크게 외쳤다.
변사또:
“이에, 그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
순간—
곳곳에서 숨죽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월매:
“안 된다!! 안 된다아!!”
월매가 울부짖으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향단:
“아씨!! 안 돼요!!”
향단도 눈물을 쏟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군졸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춘향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미소 지었다.
춘향:
“…울지 마십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춘향:
“부끄러운 죽음이 아니옵니다.”
월매는 무너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월매:
“춘향아… 안 된다…
이 어미 두고 가지 마라…”
춘향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춘향:
“…도련님.”
아주 작은 목소리.
춘향:
“약속… 지켰습니다.”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변사또는 손을 들어 올렸다.
변사또:
“집행하라.”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발걸음이,
그 침묵을 깨기 직전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관아 마당—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형이 집행되기 직전의 순간.
그때—
저 멀리서 또각, 또각—
단정하고 힘 있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향했다.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더 이상 거지 차림이 아닌,
깔끔한 관복을 갖춰 입은
이몽룡이었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게 울렸다.
군졸들이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저 자는 누구냐…”
“아까 그 거지 아니었나…?”
변사또의 눈이 가늘어졌다.
변사또:
“…뭐냐, 저놈은.”
몽룡은 마당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걸음을 멈췄다.
고요함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몽룡:
“…멈추어라.”
짧은 한마디.
그러나—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집행하려던 군졸들의 손이 멈췄다.
변사또가 인상을 찌푸렸다.
변사또:
“이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그 순간—
몽룡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마패였다.

횃불빛에 반짝이며,
그 존재를 분명히 드러냈다.
순간—
마당 전체가 얼어붙었다.
군졸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군졸들:
“암행어사 나리이시옵니다!!”
변사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몽룡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그 눈빛은 차갑고 단호했다.
몽룡:
“나는 조정의 명을 받아
이 고을의 실정을 살피러 온 암행어사—”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분명하게 이름을 밝혔다.
몽룡:
“이몽룡이다.”
그 이름이 울려 퍼지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춘향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춘향:
“…도련님…”
몽룡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변사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몽룡:
“…이 잔치는 여기까지다.”
그 한마디는
선고와도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뒤집힐 순간이,
눈앞에 와 있었다.
관아 마당을 뒤흔드는 외침—
“암행어사 출두요!!!”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정적을 깨고 사방에서 군졸들이 쏟아져 나왔다.
횃불을 든 채,
손에는 굵은 방망이를 움켜쥔 군졸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변사또와
주변 아전들, 그리고 아부하던 고을 수령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잡아라!! 하나도 놓치지 마라!!”
순식간에 상황은 뒤집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놔라!! 이놈들아!!”
변사또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변사또: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느냐!!”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정한 목소리였다.
군졸:
“암행어사 어명이시다!
모두 결박하라!”
아전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도망간다! 잡아라!”
곳곳에서 붙잡히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부하던 수령들 또한 얼굴이 창백해진 채
무릎을 꿇었다.
“나리! 저희는 몰랐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중심에—
한 손에 마패를 들고 선
이몽룡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몽룡:
“백성을 괴롭히고,
법을 사사로이 쓴 죄—”
그는 변사또를 똑바로 바라봤다.
몽룡:
“오늘 이 자리에서
낱낱이 밝히겠다.”
변사또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변사또:
“이건 모함이다!
나는 죄가 없다!!”
몽룡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몽룡:
“그 말…
곧 스스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군졸들이 더 단단히 결박했다.
방망이 소리, 발버둥치는 소리,
그리고 터져 나오는 비명들—
하지만 그 모든 소리 위에
하나의 흐름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무너지는 권력,
드러나는 진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정의의 심판이었다.

관아 마당을 뒤흔들던 소란이 가라앉고—
포승줄에 묶인 채 무릎 꿇은
변사또와 아전들, 수령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가운데 선
이몽룡은
천천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몽룡:
“…오늘로 모든 죄가 드러났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관아 마당 끝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몽룡:
“허나—
법은 분명히 해야 한다.”
군졸들이 긴장한 채 고개를 들었다.
몽룡:
“형의 집행은…
내일 아침으로 미룬다.”
순간, 묶여 있던 자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변사또:
“…내일이라…?”
그의 얼굴에는 잠시 안도와 불안이 뒤섞였다.
몽룡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몽룡:
“그동안—
이들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증언을 모두 받아둘 것이다.”
그는 군졸들을 향해 손을 내렸다.
몽룡:
“이 자들을 모두 하옥시켜라.”
군졸들:
“예! 명 받들겠습니다!”
군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포승줄이 다시 조여지고,
변사또와 아전들이 하나둘 끌려가기 시작했다.
변사또:
“이놈… 이몽룡!
이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졌다.
몽룡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전들 또한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억울합니다!”
“저희는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도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했다.
철컥— 철컥—
옥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몽룡: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옥문 쪽으로 향했다.
몽룡:
“내일—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깊은 밤,
관아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에는
폭풍이 지나간 뒤가 아닌,
진짜 심판을 앞둔
무거운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그 한가운데,
정제된 관복을 입은
이몽룡이 엄숙히 앉아 있었다.
그 앞에 불려 나온
성춘향.
이제는 풀려났지만,

여전히 긴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잠시 침묵—
그리고 몽룡이 입을 열었다.
몽룡:
“…성춘향.”
춘향이 조용히 답했다.
춘향:
“…예, 나리.”
몽룡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몽룡:
“그대는 관아의 명을 거역한 바 있다.”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월매와 향단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몽룡:
“비록 전 사또의 부당함이 있었으나—
법은 법이다.”
춘향의 손이 살짝 떨렸다.
춘향:
“…그리하시옵니까…”
몽룡은 한 걸음 다가섰다.
몽룡:
“이에, 명한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몽룡:
“지금부터—
나의 수청을 들라.”
순간—
공기가 멈춘 듯 조용해졌다.
월매:
“이게 무슨…!”
향단:
“나리… 설마…”
방자는 옆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방자:
(속으로)
“…도련님, 또 시작이시랑께…”
춘향은 잠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춘향:
“…소녀는 이미 정한 마음이 있사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
춘향: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사옵니다.”
몽룡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굳어졌다.
몽룡:
“…그리하겠다는 것이냐.”
춘향은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에는 변함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춘향:
“…죽을지언정, 따를 수 없사옵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몽룡의 입가에 아주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일부러 내린 명령이었다.
몽룡:
(아주 작게)
“…역시… 변함없구나.”
몽룡:
“…성춘향.”
춘향이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춘향:
“…예, 나리.”
몽룡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몽룡:
“끝까지 마음을 지켰다 하였느냐.”
춘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춘향:
“…그러하옵니다.”
그 순간—
몽룡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차갑던 어조가,
아주 미묘하게 부드러워졌다.
몽룡:
“…그 마음—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이더냐.”
춘향은 잠시 떨리는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말했다.
춘향:
“…소녀의 정인은—
오직 한 분이옵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춘향:
“…이몽룡 도련님이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몽룡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몽룡:
“…그렇다면—
그 도련님이 여기 있다면, 어찌하겠느냐.”
춘향의 눈이 흔들렸다.
춘향:
“…그럴 리… 없사옵니다…”
몽룡은 한 걸음 내려왔다.
그리고—
몽룡:
“…그럴 리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났느니라.”
그는 또렷하게 말했다.
몽룡:
“내가—
이몽룡이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춘향:
“…도… 도련님…?”
춘향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방자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방자:
“하하! 이제야 밝히구만요!
아씨, 맞어라! 진짜 우리 몽룡 도련님이제라!”
월매는 입을 틀어막았다.
월매:
“세상에…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향단은 울음을 터뜨렸다.
향단:
“아씨… 아씨… 도련님 맞아요…!”
춘향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춘향:
“…정말… 도련님이옵니까…”
몽룡은 그녀 앞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몽룡:
“…늦어서 미안하다.”
그 한마디에—
춘향의 눈물이 더욱 쏟아졌다.
춘향:
“…소녀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사옵니다…”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방자:
“…이게 바로… 해피엔딩 시작이제라…”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진짜 재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관아의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고—
재회의 기쁨이 퍼져가던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바로
월매였다.
월매는 눈물을 닦더니,
곧바로 이몽룡을 향해 쏘아붙였다.
월매:
“도련님!!”
몽룡이 살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몽룡:
“…어머님…”
하지만 월매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월매:
“이게 지금… 할 말이 그거 한 마디냐?!”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방자는 옆에서 눈치를 보며 한 발짝 물러섰다.
월매:
“늦어서 미안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몽룡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월매는 손으로 춘향을 가리켰다.
월매:
“우리 아씨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기는 아느냐!!”
춘향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춘향:
“어머님… 그만…”
하지만 월매는 멈추지 않았다.
월매:
“몇 년이다! 몇 년!!
옥에 갇혀서 매 맞고, 굶고, 버티고—
그걸 다 이겨낸 게 누군데!”
몽룡은 고개를 숙였다.
월매:
“그런데 도련님은 뭐냐?
거지 차림으로 와서 시험까지 보고, 잔치 구경하고—”
방자가 움찔했다.
방자:
(작게)
“…아니, 그건 작전이었는디라…”
월매가 번뜩이며 방자를 노려봤다.
월매:
“너도 같이 있었지?!
둘이서 아주 신났겠다!”
방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월매는 다시 몽룡을 향해 돌아섰다.
월매:
“도련님이 진짜로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끌고 왔겠느냐!”
그 말에—
몽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
그리고 몽룡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몽룡:
“…맞습니다.”
월매가 멈칫했다.
몽룡:
“늦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몽룡:
“그 모든 책임—
제가 지겠습니다.”
월매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았지만—
그 진심은 느껴졌다.
월매:
“…흥.”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월매:
“말은 잘한다…”
잠시 침묵 후—
작게 덧붙였다.
월매:
“…그래도, 이제라도 왔으니…
한 번은 봐주마.”
방자가 슬쩍 중얼거렸다.
방자:
“…이 정도면 엄청 풀리신 건디요…”
월매가 다시 노려보자,
방자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꾸짖음 속에서도
조금씩 풀려가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시 이어진 인연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밤새 이어지던 긴장이 걷히고,
희미한 안개 속에서 관아 마당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새벽 공기,
그리고 그 가운데—
포승줄에 묶인 채 무릎 꿇고 있는
변사또와
그를 따르던 아전들.

어제까지 권세를 휘두르던 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떨고 있었다.
마당 중앙에는
관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이몽룡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죄목이 적힌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군졸들이 양옆에 정렬해 서고—
백성들 또한 조용히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다.
몽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몽룡:
“들어라.”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했다.
몽룡:
“이 자— 변사또는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고,
무고한 이를 옥에 가두며—
법을 사사로이 휘두른 죄가 있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몽룡:
“또한, 아전들과 결탁하여
부정을 일삼고,
백성을 괴롭힌 죄—”
그는 시선을 내려
무릎 꿇은 자들을 바라봤다.
몽룡: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변사또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
변사또:
“…이몽룡… 네가 감히—”
그러나 말은 끝나지 못했다.
군졸이 어깨를 눌러 다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몽룡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몽룡:
“이에—
국법에 따라 형을 집행한다.”
순간—
마당의 공기가 완전히 멈춘 듯 고요해졌다.
한쪽에서
방자가 숨을 삼켰다.
멀리서 성춘향과 월매, 향단이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몽룡이 손을 들어 올렸다.
몽룡:
“…집행하라.”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군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발걸음 소리,

그 모습을 길가에 모여든 백성들이 지켜보며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그 변사또 맞지…?”
“맞아… 그렇게 큰소리치던 양반이…”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한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결국 저 꼴이 나는구먼…”
옆에 있던 장사꾼이 씁쓸하게 웃었다.
“맨날 세금 더 내라고 닦달하더니…
이젠 저 수레 위에서 덜덜 떨고 있네…”
어떤 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동안 우리 등쳐먹은 거 생각하면—
저것도 부족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될 줄은…”
아이 하나가 어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아버지, 저 아저씨 왜 묶여 있어요?”
아버지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저렇게 벌을 받는 거란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조용히 붙잡혀가는 이들을 바라봤다.
묶인 죄인들은 조용히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고개를 떨군 변사또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다.
백성들 사이에서 마지막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다…”
긴장된 숨소리—
그리고—
무너지는 권력의 마지막 순간.
햇빛이 점점 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어제까지 어둠에 가려져 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드러나고—
남원 고을에는
비로소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원의 소란이 모두 가라앉고—
길고 어두웠던 시간이 지나간 뒤,
고을에는 다시 평온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부패한 관리들은 모두 벌을 받고,
백성들의 억울함도 하나씩 풀려나갔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이몽룡은
이제 더 이상 차가운 얼굴의 암행어사가 아닌—
본래의 따뜻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정자에서
성춘향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잔잔한 바람이 옷자락을 스치고,
연못에는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그때—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몽룡:
“…이제야 조용해졌구나.”
춘향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빛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리움과—
이제는 확신으로 바뀐 마음이 담겨 있었다.
춘향:
“…도련님.”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수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몽룡은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몽룡:
“많이… 힘들었지.”
춘향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춘향:
“…기다릴 수 있었기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몽룡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몽룡:
“…나는 매일 후회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하고.”
춘향이 미소 지었다.
춘향:
“이제 오셨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잠시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닌, 편안함이었다.
몽룡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몽룡:
“…이제는 더 이상
헤어질 일 없게 하겠다.”
춘향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춘향:
“…약속이옵니까?”
몽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
“이번에는—
반드시 지키겠다.”
춘향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방자:
“이제 진짜 끝났어라…
아니, 인제 시작인가…”
그 옆에서
월매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월매:
“이번엔 또 어디로 도망가면 가만 안 둔다…”
그리고
향단은 눈을 훔치며 웃었다.
향단:
“이제 아씨… 웃을 일만 남았어요…”
정자 위,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다.
긴 시련 끝에—
결국 다시 이어진 인연.
그리고 그 사랑은
이제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굳건한 약속이 되어
조용히, 그러나 깊게
이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