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
남원 관아의 깊숙한 곳—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차가운 옥사 안에는
성춘향이 홀로 앉아 있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갇혔을 때의 고운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위에는 긴 세월의 흔적이 덧씌워져 있었다.
거친 바닥, 축축한 공기,
그리고 끊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춘향의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도련님…”
그녀는 낮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몽룡.
그 이름 하나가
수년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전부였다.
수청을 들라는 명령은 셀 수 없이 내려왔다.
그때마다 춘향은 단 한 번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이 몸은 이미 정한 인연이 있사옵니다.”
그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매질도, 굶주림도, 고립도 견뎌냈다.
어느 날—
옥사 문이 덜컥 열렸다.
“면회다.”
천천히 들어온 사람은
춘향의 어머니, 월매였다.
월매:
“춘향아…”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춘향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애써 웃음을 지었다.
춘향:
“어머니… 어찌 여기까지…”
월매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월매:
“이게… 이게 무슨 꼴이냐…
내 딸이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춘향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춘향:
“울지 마십시오, 어머니.”
하지만 월매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월매:
“그놈 말 한마디면…
이 고생 다 끝낼 수 있지 않느냐…
수청 한 번 들면… 다 끝나는 일 아니냐…”

그 말에,
춘향의 표정이 조용히 굳어졌다.
춘향:
“어머니.”
짧은 한마디였지만, 단호했다.
춘향:
“그리하여 목숨은 건질지언정…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어찌하겠습니까.”
월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춘향:
“이 몸은 이미 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저버린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옵니다.”
월매의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월매:
“그 사람이…
정말로 돌아올 것 같으냐…”
춘향은 잠시 침묵하다가,
아주 조용히 미소 지었다.
춘향:
“…옵니다.”
그 한마디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춘향:
“반드시 옵니다.”
옥사 안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잔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와 전혀 다른 세계가
이곳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월매는 떨리는 손으로 창살을 붙잡았다.
월매:
“춘향아…
부디… 버텨다오…”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
“걱정 마십시오, 어머니.”
그리고 다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도련님이… 오실 때까지…”
그녀의 시간은 멈춰 있었지만,
그 기다림만큼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관아 깊은 곳, 축축한 돌벽에 둘러싸인 옥사 안.
희미한 빛 아래, 성춘향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녀의 자리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철컥—
문이 열리며 옥졸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잠시 춘향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옥졸:
“아가씨… 아직도 그러고 있소?”
춘향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히 답했다.
춘향: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옥졸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옥졸:
“아니, 그… 사또 나리 말씀 말이오.
이제 그만 고집 꺾고… 한 번만 들어드리면 끝날 일을…”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춘향:
“그 말… 이미 수없이 들었습니다.”
옥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옥졸:
“솔직히 말해서… 나도 답답하오.
이렇게 버틴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춘향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춘향:
“달라지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옥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옥졸:
“아가씨, 세상은 그런 식으로 안 돌아갑니다.
살아야 뭐라도 하지 않겠소?”
춘향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춘향: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옥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더 낮췄다.
옥졸:
“솔직히 말해봅시다.
사또 나리 성질 아시잖소.
계속 거부하면… 더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습니다.”
춘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춘향:
“이미… 충분히 겪었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었다.
옥졸은 고개를 떨궜다.
옥졸: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춘향은 아주 잠시 멀리 바라보았다.
마치,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춘향: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옥졸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옥졸:
“…그 사람이, 정말 옵니까?”
춘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춘향:
“…옵니다.”
그 한마디는
그 어떤 설득보다 단단했다.
옥졸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옥졸: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부러울 지경이네…”
그는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철컥—
다시 문이 닫히고,
옥사는 또다시 고요해졌다.
춘향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도련님…
저는 여기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기다림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옥사의 작은 창살 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 빛을 바라보며 성춘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도… 하늘은 변함없구나…”
“…도련님도… 이 하늘을 보고 계실까…”
“…이 마음… 전해지고 있겠지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아주 작게—
“…기다리겠습니다…”

어둑한 옥사 안, 문이 덜컥 열리며 바깥의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손에 소박한 음식 꾸러미를 들고 들어온 이는
월매와 향단이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성춘향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춘향:
“어머니… 향단아…!”
향단은 울먹이며 달려오듯 가까이 다가왔다.
향단:
“아씨… 이게 무슨 꼴이세요… 이리 야위시고…”
월매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음식을 내려놓았다.
월매:
“이거라도 좀 먹어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지…”
춘향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
“이렇게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옵니다.”
향단은 눈물을 훔치며 음식을 풀어놓았다.
향단:
“아씨, 이거 다 아씨 좋아하시는 것들로만 준비했어요…
조금이라도 드셔야 힘을 내시죠…”
춘향은 잠시 음식을 바라보다가, 작은 한 숟갈을 들었다.
춘향:
“…고맙다, 향단아.”
월매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월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이 고생을… 언제까지…”
춘향은 조용히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춘향: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단했다.
춘향: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향단이 울음을 터뜨리듯 말했다.
향단:
“아씨… 그냥 한 번만… 한 번만 들어주시면 안 돼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나실까 무서워요…”
춘향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춘향:
“…그리할 수 없다.”
짧은 말이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월매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월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느냐…”
춘향은 부드럽게 답했다.
춘향:
“살아도… 제 마음이 죽는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옵니다.”
옥사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향단은 흐느끼며 고개를 떨구었고,
월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춘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춘향:
“어머니… 향단아…”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춘향: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 안에 담긴 믿음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옥사 안,
짧은 만남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세 사람의 마음은 더 깊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원 골목 깊숙한 곳, 허름한 초가집 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월매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 앞에는 남루한 거지 차림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이몽룡과 방자였다.
월매:
“뭐야! 또 거지냐?!
여긴 줄 것도 없어! 다들 굶어 죽게 생겼어!!”
방자는 움찔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방자:
(작게)
“…도련님, 시방 분위기 많이 안 좋은디요…”
몽룡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몽룡:
“부인… 잠시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월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월매:
“말씀?! 무슨 말씀?!
지금 내 딸이 옥에 갇혀 죽어가는데
내가 무슨 여유로 거지랑 이야기를 해?!”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월매:
“다들 와서 똑같은 말만 해!
조금만 참으라느니, 곧 풀릴 거라느니—
뭐가 풀려?! 뭐가!!”
방자는 놀라서 몽룡을 슬쩍 쳐다봤다.
방자:
(속삭이며)
“…도련님,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합니다…”
몽룡은 아무 말 없이 월매를 바라봤다.
몽룡:
“…따님 일로 여쭙고자 합니다.”
그 말에, 월매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월매:
“…뭐라고?”
그녀는 한 걸음 다가왔다.
월매:
“춘향이 얘기를… 왜 네가 물어?”
몽룡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몽룡:
“옥에 갇혀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 순간—
월매의 감정이 터져버렸다.
월매:
“그래!! 갇혀 있다!!
그놈의 사또 때문에 갇혀서
몇 년을 그 지옥 같은 데서 버티고 있다!!”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월매:
“그놈이 뭐라고!!
그냥 한 번만… 한 번만 고개 숙이면 되는 걸!!
그걸 못 해서… 저 고생을 다 하고 있어!!”
방자는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방자:
“…몇 년씩이라…?”
월매는 거의 울부짖듯 말했다.
월매:
“그래! 몇 년이다!!
맞으면서도, 굶으면서도—
끝까지 안 굽힌다!!”
그녀는 주저앉듯 바닥에 털썩 앉았다.
월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왜 그렇게까지 버티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월매:
“그놈의 약속 때문이라더라…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놈을 믿고…
이렇게 버티고 있다더라…”
몽룡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방자:
(작게)
“…도련님…”
월매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말했다.
월매:
“차라리… 차라리 나를 미워해도 좋으니까…
살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허공을 보며 외쳤다.
월매:
“그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살아 있긴 한 거야?!
이 꼴을 알기나 하는 거냐고!!”
순간, 방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몽룡 역시 고개를 숙인 채
그 말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월매는 마지막으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월매:
“…돌아올 거라더라…
끝까지 믿는다더라…”
그 말이 끝나자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몽룡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몽룡:
“…곧, 끝날 것입니다.”
월매는 그 말을 듣고도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허름한 방 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눈물을 훔치던 월매 앞에
거지 차림의 사내—이몽룡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몽룡:
“…부인.”
월매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매:
“뭘 또 묻겠다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가라…”
몽룡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몽룡:
“…그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월매의 손이 멈췄다.
월매:
“…뭐라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몽룡:
“부인께서 말씀하신…
그 ‘돌아온다던 사람’ 말입니다.”
월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월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몽룡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몽룡:
“…소생이, 그 사람입니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월매:
“…뭐…?”
월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월매:
“지금 뭐라고 했냐…?
다시 말해봐라…”
몽룡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몽룡:
“이몽룡이옵니다.”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월매의 얼굴이 굳었다.
월매:
“…거짓말 하지 마라…”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월매:
“그럴 리가 없다…
그 도련님이… 이 꼴로…?”
방자는 옆에서 급하게 끼어들었다.
방자:
“아씨… 아니, 어머님! 진짜 맞으요!
제가 옆에서 모시던 방자랑께요!”
월매의 시선이 방자에게로 향했다.
월매:
“…방자…?”
그녀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자:
“예! 그때 그 방자여라!
지금… 완전 거지꼴로 이렇게 찾아왔지만이라…”
월매는 몽룡을 다시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눈을, 말투를—
하나하나 확인하듯 바라보았다.
월매:
“…정말… 도련님이냐…”
몽룡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몽룡:
“그동안… 늦어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에—
월매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월매:
“이놈아…!!”
그녀는 몽룡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월매:
“이제야 왔느냐!!
이제야…!!”
몽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월매:
“춘향이는…
춘향이는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고생을 다 하면서도…!!”
몽룡의 눈빛이 깊어졌다.
몽룡:
“…알고 있습니다.”
월매는 눈물을 흘리며 몽룡을 붙잡았다.
월매:
“살려다오…
내 딸 좀 살려다오…”
몽룡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
몽룡: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확고했다.
그 순간—
월매의 절망 속에
비로소 한 줄기 희망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월매:
“…세상에…”
월매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월매:
“그 고운 도련님이…
이렇게까지 변해 돌아올 줄이야…”
향단은 입술을 꾹 깨물며 몽룡을 바라봤다.
향단:
“아씨가 이 모습 보시면…
가슴이 무너질 거예요…”
월매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월매:
“저 애가…
저 애가 몇 년을 그 옥에서 버틴 이유가 뭔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월매:
“저렇게 돌아온 도련님을 보려고…
그 고생을 다 견딘 건데…”
향단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향단:
“도련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저 옷은… 언제부터 저렇게 입고 다니신 거예요…”
월매는 고개를 저었다.
월매:
“아니야… 힘든 게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몽룡을 보며 말을 이었다.
월매:
“저 신분으로… 저 차림으로…
이 험한 세상을 돌아다녔다는 게…”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월매:
“…얼마나 서러웠을까…”
향단은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향단:
“아씨는… 도련님이 잘 지내고 계실 거라고…
좋은 자리에서 편히 계실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계속 말했다.
향단:
“이걸 알았으면…
더 마음 아파했을 거예요…”
월매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월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버텼구나…”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월매:
“한 사람은 옥에 갇혀서…
한 사람은 이런 꼴로 세상을 떠돌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향단:
“…이제라도 만나게 해드려야죠…”
월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월매:
“그래…
이제 더는 늦으면 안 된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몽룡에게 향했다.
그의 초라한 모습이 더 이상 슬픔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어둡고 차가운 옥사 안.
희미한 빛이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가운데,
문이 철컥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월매와 향단,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남루한 차림의 이몽룡과 방자가 들어섰다.
구석에 앉아 있던 성춘향이 고개를 들었다.
춘향:
“…어머니…?”
그녀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낯선 두 거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춘향:
“…누구십니까…”
월매는 눈물이 맺힌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월매:
“춘향아… 잘 봐라…
누군지… 잘 봐라…”
춘향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남루한 옷, 먼지 묻은 얼굴—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잠시 후—
춘향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춘향:
“…도… 련님…?”
방자는 순간 울컥하며 말했다.
방자:
“아씨… 맞습니다요…
도련님이시구만요…”
몽룡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섰다.
몽룡:
“…춘향아.”
그 한마디.
수년의 시간이 담긴 그 목소리에
춘향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춘향:
“…정말… 도련님이십니까…”
몽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
“늦어… 미안하다.”
춘향은 손을 떨며 창살 쪽으로 다가왔다.
춘향: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리 오신 것만으로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향단:
“아씨… 보셨어요…
도련님 진짜 오셨어요…”
월매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월매:
“내가 뭐라 했냐…
온다고 했지 않느냐…”
춘향은 창살을 붙잡고 몽룡을 바라봤다.
춘향:
“…이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몽룡: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몽룡:
“지켜낸 것이다.”
춘향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몽룡:
“네가 지킨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
방자는 옆에서 훌쩍이며 끼어들었다.
방자:
“아씨… 도련님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라…
지도 그라고요…”
향단이 울면서 말했다.
향단:
“지금 그게 중요해?!”
잠시 눈물 속에서도 웃음이 섞였다.
춘향은 다시 몽룡을 바라봤다.
춘향:
“…정말… 오셨군요…”
몽룡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몽룡:
“…이제 끝이다.”
그 말에 모두의 숨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몽룡:
“더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
춘향의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춘향:
“…기다렸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날,
차가운 옥사 안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옥사 한켠, 면회를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월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남루한 차림의 이몽룡에게 향했다.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지만,
입가에는 씁쓸한 비웃음이 스쳤다.
월매:
“허허… 이게 참…”
그녀는 팔짱을 끼며 몽룡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월매:
“우리 아씨가 몇 년을 목숨 걸고 기다린 사람이…
이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방자가 움찔하며 몽룡을 슬쩍 봤다.
방자:
(작게)
“…도련님, 시작됐어라…”
월매는 멈추지 않았다.
월매:
“아니, 도련님 맞긴 한 거냐?
아니면 길에서 굶다 온 거지 하나 데려온 거냐?”
향단이 깜짝 놀라며 말렸다.
향단:
“어머님…!”
하지만 월매는 손을 휘저으며 계속 말했다.
월매:
“아니 내가 지금까지 속으로 뭐라 생각했는 줄 아느냐?”
그녀는 일부러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월매:
“우리 도련님은 어디서 벼슬도 하고,
비단 옷 입고, 좋은 데 앉아 계실 줄 알았다!”
그리고 몽룡의 옷자락을 툭 건드렸다.
월매:
“근데 이게 뭐냐…
이건 비단이 아니라… 거의 걸레 아니냐…”
방자가 발끈했다.
방자:
“아니, 이거 일부러 이러신 거랑께요!
작전인디라 작전!”
월매는 피식 웃었다.
월매:
“작전?
그래, 아주 대단한 작전이다.
보는 사람 눈물 쏙 빼놓는 작전이네.”
몽룡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월매:
“이 꼴로 돌아와서…
‘내가 몽룡이다’ 하면 누가 믿겠냐고.”
잠시 침묵.
그리고 월매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월매:
“…그래도 뭐…
살아는 돌아왔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월매:
“그거 하나는… 칭찬해주마.”
방자는 눈치를 보며 슬쩍 말했다.
방자:
“…칭찬 맞죠 그거…?”
향단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향단:
“어머님은 진짜…
말씀을 왜 저렇게 하세요…”
월매는 코웃음을 쳤다.
월매: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거다.”
그리고 다시 몽룡을 보며 말했다.

월매:
“도련님, 이제 그 거지 놀음 그만하고…
우리 아씨부터 좀 살려보시지.”
몽룡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몽룡:
“…그리하겠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확실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월매는 그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월매:
“…이제야… 사람 같네.”